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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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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능동적 공동체로 『토지』 읽기>

그가 나에게로 왔다

유대인이었던 탓에 기구한 인생을 살다 1952년에 죽은, 카프카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 도라. 카프카와 도라와 함께 지내던 에피소드이다. 카프카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다. 소녀가 아끼던 인형을 잃은 것이다. 카프카가 그 소녀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란 소녀가 쳐다보았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렇게 말했어.” “정말요? 편지는 어디 있죠?” “편지는 집에 있단다. 내일 여기 다시 오면 내가 가져다줄게.” 그날 밤 카프카는 소녀에게 갖다줄 인형의 편지를 썼다. 다음 날 소녀에게 편지를 읽어주었다. 3주일 동안 편지를 쓰고 읽어주는 일이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소녀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시점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카프카와 도라는 그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의 감동은 어린 소녀의 감성을 울린 것이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서사의 기본 원리인 호기심과 기다림이었다. 그 에피소드가 진실이냐 아니냐는 상관이 없다. 서사는 독자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기다림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 아주 간단한 원리임에도 그동안 그렇게 작품을 써왔는가는 필자조차 회의가 든다. 자기 독백이나 세상에 대한 자기 토로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자기반성보다는 세상을 탓하고 그것을 원리로 사람을 선동하고 부추기는 험한 세상이다. 그보다 드러나지 않게 스스로 빛을 밝히는 아름다운 주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삶을 통하여 마음속의 촛불을 스스로 불태우며 그 온기로 따뜻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런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작은 빛들이 모여 세상을 환히 밝히는 그때가 오기를 염원해본다.

아웃사이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시간 절약이다. 회의다, 세미나다, 직접 발걸음을 해야 했던 것이 줌(ZOOM)으로 대체되면서 그만큼 절약이 된 것이다. 대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 안에서의 가사 노동이 증가하게 되었다. 어떤 상황이든 양면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이면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는데, 그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주변 정리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채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웃사이더』를 쓰면서도 삶의 이면성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던 첫해 김정은과의 남북한 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온통 나라가 들썩였다. 그 당시는 ‘나’ 개인의 삶이 희생될 것을 각오까지 하면서 통일에 대한 보랏빛 꿈을 꾸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김일성이나 이승만의 역량을 초월한, 남북을 통합할 민족 대통령이 될 만한 인물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가능성의 꼬리를 잡고 이런 경우, 저런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한동안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 돌던 생각의 끄나풀이 결국 『아웃사이더』로 나오게 되었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개인의 삶은 혹은 국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나, 내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다. 일천한 경험과 제한된 독서에 의해서 부족한 면이 많은 어설픈 글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잘하려고 하지만 그 능력의 한계는 뛰어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한계를 표출하면서까지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나의 살아 있음의 지표이다. 살아 있는 한 쓸 것이고 최대한의 노력을 할 것이다. 오직 희망은 더 폭넓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공감대를 얻고 싶다는 것이다. 그동안 노력하지 않고 얻은 공덕을 이제는 노력하며 얻는 공덕이 되게 할 것이다.

하늘 아래 첫 서점

무더위 때문에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보통 더위를 타지 않는 편인데도 이번 여름의 열대야는 새벽까지 후끈거려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움직이면 땀이 솟으니 될 수 있으면 외출을 삼갔다.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사색으로 이어졌다. 우선 근본적인 내 삶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혹은 민족의 운명, 국가의 운명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띄엄띄엄 사색만 이어질 뿐 결론은 있을 리 없다.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해야 하고 그 무언가가 나에게는 글쓰기이다. 자신에 혹은 삶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나 사색을 통하여 독자에게 울림을 줘야 한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글쓰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독자가 내 소설을 읽음으로써 힘이 나고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삶의 영역이 일천하다 보니 현장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또 함께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을 제대로 읽었는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작가는 독자들이 읽지도 않는 소설을 자족하기 위해 쓰고 싶지 않다며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일생 한 편의 작품이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일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속적으로 쓸 생각이다.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사색을 하고 인간을, 현 사회 현상을, 국가와 민족을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흔들리며 피는 꽃

세계 최고의 자살률, 꿈과 상상력을 키워야 할 아이들이 시달리는 심한 입시 경쟁 , 인터넷에 범람하는 악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세월호 같은 대형 사고 등, 이 모든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개인의 존엄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자기가 속한 사회에 모멸감을 느끼게 한다. 빠른 경제적 성장으로 인한 후유증, 후기 산업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과도한 경쟁에서 오는 좌절감과 불안은 개인의 자존감을 잃게 한다. 자존감이 낮은 개인이 다수인 집단일수록 불안과 불만이 쌓이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들은 한 개인 개인의 존엄을 살리는 정책을 통하여 복지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 기업가 역시 회사 구성원들의 기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둔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신문을 비롯한 매스컴에서도 사회 구성원들이 모멸감을 느끼는 사건을 파헤치는 뉴스보다 좀더 사회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존엄을 세우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다. 이번 장편 『흔들리며 피는 꽃』은 우연히 알게 된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의 이야기를 유튜브로 보았을 때의 감동을 소설화한 것이다. 30년 전, 전재용 선장은 난민 구출에 관여치 말라는 선박회사의 명령까지 물리치고 베트남 난민 96명을 구출하여 무사히 부산 난민촌에 안착시켰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 가족의 안녕까지도 위협하는 결단이었다. 전재용 선장은 귀국 후 직업을 잃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후일담을 상상력으로 복원한 것이다. 전재용 같은 의인이 우리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것을 작품화하고 싶었다. 전재용 선장이 난민을 구한 사건까지는 실화지만 나머지는 모두 허구적 상상력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몇십 년간 소설을 연구하고 소설을 써오면서 소설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에서 정치가를 비롯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집단이 한 개인의 존엄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소망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성장만큼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존엄이다. 사회복지는 개인의 존엄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이 높을 때 그가 속한 단체와 사회는 활기차고 타인에 대한 배려로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 소설은 예술이기 때문에 심미적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심미적 목적을 드러내는 감동이 인간에 대한 감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우리 사회에 한 편의 소설로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는 미시적 파동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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