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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김지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1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목포 (물병자리)

사망:2022년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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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김지하 마지막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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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뱃노래

이 책, <남조선 뱃노래>(당시엔 <남녘땅 뱃노래>)가 출간된 것이 벌써 20여 년 전이다. 20여 년 전의 옛 책을 다시 붙들고 있자니 감회가 기묘하다. 우선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제목이다. 나의 첫 제목은 지금과 같은 ‘남조선(南朝鮮)’이었는데 주변의 여러 친구들이 자꾸 말려서 ‘남녘땅’으로 바꾼 것이다. 왜? 내가 긴 감옥살이에서 막 출옥한 뒤였고 또 세상이 아직도 ‘남조선’이란 말에 익숙하지 않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바로 그놈의 ‘남조선’이란 말 한마디 시방 막 세계적 화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간태합덕(艮兌合德)’이라는 정역(正易)의 한 화두(한미 연합을 뜻함)를 가지고 워싱턴 강연차 그곳에 갔을 때 한 전직 주한 특파 기자였던 지식인이 가라사대, “미국인은 한국이 지구의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던 그 말 한마디가 아직도 내 뇌리에 마치 더러운 똥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판에 ‘남조선’이라! ‘South Korea’라! 나의 대학 선배인 김준길 선생이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에서 쓴 한 논문 「South Korea」가 뉴욕에서 큰 상을 받았다. 이 서문과 함께 그 수상소감을 번역해서 끝에 싣는다. 그 선배 왈, “그 글의 시작은 바로 자네의 책 <남녘땅 뱃노래>야!” 이렇게 되었다. 김치, 비빔밥, ‘K-pop’ 때문인가? 아마도 월가의 금융쇼크 이후 세계문명의 중심이 서쪽(대서양)에서 동쪽(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음 때문인가? 더군다나 바로 지금 이 ‘개벽’의 때에, 이 ‘화엄’과 동서 융합, 그리고 ‘네오-르네상스’의 한류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는 바로 이때에……? 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아내가 유일하게 평가하는 책이 바로 이 <남조선 뱃노래>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2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붙들고 있자니 아무래도 기이하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거의 다 그대로 두고 지나간다. 그쪽이 훨씬 편해서다. 편한 것! 그것이 바로 ‘South Korea’ 아니던가!

못난 시들

남는 게 없어도 좋다 남기 위해 살아오지도 않았고 기억되기 위해서 쓰고 있지도 않다. 나의 평소의 시학, ‘아니다-그렇다’의 모순어법, ‘숨은 차원’과 ‘드러난 차원’ ‘공(空)’의 텍스트 개입, 이것들은 여기 거의 없다. 어느 날인가는 이 못난 시도 또한 넘어설 것이다. 나그네는 길에서 죽는 법. 다만 지금의 내겐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하나 주어져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모심, 비움, 못난 웃음과 엉뚱한 풍자, 그리하여 드러나는 희극적인 괴(怪), 그것이 과연 우아한 귀족 예술가들 전문의 비극과 비장미 없이도 숭고와 심오에 가닿을 수 있는가? 동서양 미학의 역사, 그 어디에도 그런 것은 없다. 그럼에도 묻는다. 나 같은 밑바닥 민초들의 허름한, 그리고 시시껄렁 웃기는 삶에서도 최고의 미학 차원인 숭고와 심오라는 이름의 ‘흰 그늘’이 가능할 것인가? 숭고의 미학적 비밀은 괴(怪)에 있고 괴의 초점은 날카로운 풍자에 있다. 그런데도 내 풍자의 칼끝은 물론 의도대로지만 한없이 무디고 끝없이 부드럽다. 그럼에도 도리어 ‘흰 그늘’은 가능할 것인가? ‘기위친정(己爲親政)’의 북극 복귀는 미학적 현실에서도 오히려 가능할 것인가? 꿈도 야무져라!

빈 산

우습다. 시절이 희안하다. 정치, 경제, 과학, 사상, 그리고 종교까지도 시원찮단다. 브라질이나 터키, 동유럽까지도 아니 거의 세계 전체가 가난을 근원적으로 극복하는 <신시神市> 스타일의 질 높은 사회적 길과 숭고하고 심오한 민주주의를 요구해서 거리 데모까지 시도한다. 몇 년 후엔 거의 3, 4백억 수준의 세계인이 이 요구를 하게 될 것 같다. 단순히 글로벌 중산층의 배부른 장난이라고 욕할 수만 있을까. 아니면 우주생명 자체의 질적 전환인가. 알 수 없다. 나는 이에 대한 우리의 당장의 관심과 접근을 ??빈 산??이라는 시들로 밖에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 알아서 읽어주기 바란다. 2013년 여름

시 삼백 1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자. 어떻게? 시의 한 양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양식에 여러 가지 지향을 담아 그야말로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다른 얼굴로 비치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 생동하도록 그렇게. 여러 해 전 나는 공자가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시 이외에도 노래와 이야기와 교훈적인 시들을 엇섞어 ‘시삼백’의 백화제방을 시경으로 들어 올렸음이 당대 문예의 한 방향 제시였음을 기억해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는 우선 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삼백’을 원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먼저 나 자신부터 천태만상이니 어쩌랴! (…중략…) 그래 내 좋아하는 문학이론가 홍용희 교수에게 어느 날, ‘당신이 공자 노릇을 해라. 내가 민초 노릇을 하겠으니 한번 내 뒤죽박죽 시작들 속에서 시삼백을 건져내보라!’ 그래서 나의 수백 편의 최근 시편들을 이야기[賦], 노래[興], 교훈적인 것[比], 풍자[諷], 초월적인 명상[神]의 다섯 가지 양식으로 먼저 홍 교수가 갈라냈다. 그런데 홍 교수의 ‘시삼백’을 내가 다시 검토하면서 내 자신이 크게 놀라게 되었다. 물론 홍교수가 손댄 원고 뭉치 이외에도 수많은 시고들이 그 밖에 또 있어서이지만 좌우간 ‘부, 흥, 비, 풍, 신’ 말고도 무엇으로 갈래 짓기 힘든 매우 복잡한 지향의 컴컴한 새로운 양식적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마구니 같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어서다. (…중략…) 홍 교수가 갈래 지은 이백 편은 그대로 ‘부, 흥, 비, 풍, 신’으로 나아가되 그 밖에 백 편 정도는 다시 우선은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조금 애매한 말이지만 ‘땡’, ‘똥’, ‘뚱’으로 이름 붙여 재구성하기로 했다. ‘땡’은 물론 우리 집 고양이 김막내의 별명으로 ‘중생시(衆生詩)’의 양식이고, ‘똥’은 좀 구린내 나는 상상력의 영역, 이른바 흰 그늘이 조금 심한 편을, 그리고 ‘뚱’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거나 사는 데에 영 재미가 없는 그런 차원을 지적하는 것이겠다. 앞으로 이러한 지향이 다시 어떤 특정한 장르로까지 발전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난 잘 모르겠다.

시 삼백 2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자. 어떻게? 시의 한 양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양식에 여러 가지 지향을 담아 그야말로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다른 얼굴로 비치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 생동하도록 그렇게. 여러 해 전 나는 공자가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시 이외에도 노래와 이야기와 교훈적인 시들을 엇섞어 ‘시삼백’의 백화제방을 시경으로 들어 올렸음이 당대 문예의 한 방향 제시였음을 기억해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는 우선 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삼백’을 원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먼저 나 자신부터 천태만상이니 어쩌랴! (…중략…) 그래 내 좋아하는 문학이론가 홍용희 교수에게 어느 날, ‘당신이 공자 노릇을 해라. 내가 민초 노릇을 하겠으니 한번 내 뒤죽박죽 시작들 속에서 시삼백을 건져내보라!’ 그래서 나의 수백 편의 최근 시편들을 이야기[賦], 노래[興], 교훈적인 것[比], 풍자[諷], 초월적인 명상[神]의 다섯 가지 양식으로 먼저 홍 교수가 갈라냈다. 그런데 홍 교수의 ‘시삼백’을 내가 다시 검토하면서 내 자신이 크게 놀라게 되었다. 물론 홍교수가 손댄 원고 뭉치 이외에도 수많은 시고들이 그 밖에 또 있어서이지만 좌우간 ‘부, 흥, 비, 풍, 신’ 말고도 무엇으로 갈래 짓기 힘든 매우 복잡한 지향의 컴컴한 새로운 양식적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마구니 같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어서다. (…중략…) 홍 교수가 갈래 지은 이백 편은 그대로 ‘부, 흥, 비, 풍, 신’으로 나아가되 그 밖에 백 편 정도는 다시 우선은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조금 애매한 말이지만 ‘땡’, ‘똥’, ‘뚱’으로 이름 붙여 재구성하기로 했다. ‘땡’은 물론 우리 집 고양이 김막내의 별명으로 ‘중생시(衆生詩)’의 양식이고, ‘똥’은 좀 구린내 나는 상상력의 영역, 이른바 흰 그늘이 조금 심한 편을, 그리고 ‘뚱’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거나 사는 데에 영 재미가 없는 그런 차원을 지적하는 것이겠다. 앞으로 이러한 지향이 다시 어떤 특정한 장르로까지 발전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난 잘 모르겠다.

시 삼백 3

이제 이렇게 한번 가보자. 어떻게? 시의 한 양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여러 양식에 여러 가지 지향을 담아 그야말로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다 다른 얼굴로 비치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 생동하도록 그렇게. 여러 해 전 나는 공자가 당대 민초들의 찬가나 정치적 비판시 이외에도 노래와 이야기와 교훈적인 시들을 엇섞어 ‘시삼백’의 백화제방을 시경으로 들어 올렸음이 당대 문예의 한 방향 제시였음을 기억해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는 우선 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시삼백’을 원하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먼저 나 자신부터 천태만상이니 어쩌랴! (…중략…) 그래 내 좋아하는 문학이론가 홍용희 교수에게 어느 날, ‘당신이 공자 노릇을 해라. 내가 민초 노릇을 하겠으니 한번 내 뒤죽박죽 시작들 속에서 시삼백을 건져내보라!’ 그래서 나의 수백 편의 최근 시편들을 이야기[賦], 노래[興], 교훈적인 것[比], 풍자[諷], 초월적인 명상[神]의 다섯 가지 양식으로 먼저 홍 교수가 갈라냈다. 그런데 홍 교수의 ‘시삼백’을 내가 다시 검토하면서 내 자신이 크게 놀라게 되었다. 물론 홍교수가 손댄 원고 뭉치 이외에도 수많은 시고들이 그 밖에 또 있어서이지만 좌우간 ‘부, 흥, 비, 풍, 신’ 말고도 무엇으로 갈래 짓기 힘든 매우 복잡한 지향의 컴컴한 새로운 양식적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마구니 같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어서다. (…중략…) 홍 교수가 갈래 지은 이백 편은 그대로 ‘부, 흥, 비, 풍, 신’으로 나아가되 그 밖에 백 편 정도는 다시 우선은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조금 애매한 말이지만 ‘땡’, ‘똥’, ‘뚱’으로 이름 붙여 재구성하기로 했다. ‘땡’은 물론 우리 집 고양이 김막내의 별명으로 ‘중생시(衆生詩)’의 양식이고, ‘똥’은 좀 구린내 나는 상상력의 영역, 이른바 흰 그늘이 조금 심한 편을, 그리고 ‘뚱’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거나 사는 데에 영 재미가 없는 그런 차원을 지적하는 것이겠다. 앞으로 이러한 지향이 다시 어떤 특정한 장르로까지 발전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난 잘 모르겠다.

유목과 은둔

아홉 번째 시집인가 보다. 아마 내 시집 중에 가장 허름하고 가장 허튼 글모음일 듯하다. 허름한 것은 '졸(拙)'이고 허튼 것은 '산(散)'이니 둘 다 혼돈에 속한다. 뒤에 숨어 있어야 할 생각의 뼈대들이 앞으로 튀어나와 천정을 치기도 한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 허름하고 허튼 것들이 이상하게 가엾다. 그래 행여 풀이 죽어 스스로 흩어져 없어지기 전에 서둘러 묶는다. 날더러 할아버지라 부르거나 꼰대라고 손가락질하는 젊은애들 앞에서 혼자 빙긋 웃곤 한다. 물론 종이꽃이겠지만 허름하고 허튼 꼰대며 할아버지가 되도록 살아준 내 인생에 가끔은 여기나 저기서 꽃 비슷한 것이 혹 눈에 뜨일 때도 있어서다. 그나마 다행이다. 시란 본디 자위(自慰)가 바탕이니 그만했으면 됐다. 창비에 고맙다는 인사 보낸다. 총총.

율려란 무엇인가

율려는 치유다. 우선 병든 인간, 그를 둘러싼 사회적 예절, 그 다음에 정치, 경제적 구조, 지구생태계, 우리를 둘러싼 태양계와 은하계의 여러 이변들의 전체적 변화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의 구조에 합당하게 삶을 치료, 개혁할 수 있는 기본 출발점을 인간 내면에 있는 춤성과 음악성으로부터 찾는 것이다.

절, 그 언저리

<화개>의 애잔함과 슬픔을 넘어 신적 생명의 숭고함에로, 모순어법의 섬광과 촌철살인을 넘어 불적인 영성의 심오함에로 나아가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怪'와 '奇'와 '醜'를 도리어 시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판소리를 비롯한 민족민중 생명예술과 문학에서 고통에 찬 중력과 선명한 초월이 결합하는 미학적 원리의 이름,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될 새로운 차원의 '한류韓流'의 대명사는 다름 아닌 '흰 그늘'일 것이라는 예측이 떠오른다는 것.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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