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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정림

출생: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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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이방인·전락>

남방우편기 (외)

행동주의 작가인 생 텍쥐페리는 자기 행동의 결과를 기록에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다. 행동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그는 체험기가 아닌 것은 작품으로 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안이하고 허위에 찬 공상적인 문학 세계를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상상력이 사실을 가미하고 내용을 각색할 수는 있지만 사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0년 20세기와 더불어 남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17세 때 파리로 상경하여 1년간 미술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그 후 1921년 병역으로 항공대에 소집되어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그는 제대하고도 정기 항공로의 파일럿이 되었다. 당시 비행기는 요즘처럼 발달되지 않아 위험한 항공로를 개척하는 일도 많았고 정찰 비행대원으로서 실전에도 참가했다. 그 후 1944년 7월 31일 코르시카의 기지를 떠나 적진을 정찰하러 출격했으나 영영 지중해 상공에서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그가 이름 모를 별을 향해 비행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방 우편기〉는 1929년 그가 29세 되던 해에 발표되었다. 초기 작품인 만큼 소설적인 요소가 많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상상력을 가장 많이 활용하여 사건을 전개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후략)

사직동 그 집

수필에 입문한 지 41년 동안 네 권의 수필집과 두 권의 수필선집을 냈다. 그 외에 2권의 수필평론집과 1권의 수필이론서, 그밖에 편저와 공저를 낸 것이 전부이다. 이번에 세 번째 선집을 내면서 그 동안의 글들을 정리해 보았다. 주로 많이 알려진 작품들을 택했지만, 41년 동안의 글들을 33편으로 추리는 일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1974년부터 1990년까지의 글 12편, 1992년부터 1999년까지의 글 5편, 2000년부터 2011년까지의 글 16편을 골랐다. 이 글들은 모두 네 권의 수필집에 실려 있는 것들이고, 마지막 단행본 이후에 발표한 신작은 이 선집에 넣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행본이나 선집을 낼 때 작품 세계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발표 순서대로 놓았으나, 이번에는 역순(逆順)으로 했다. 이는 최근의 글을 먼저 보이기 위한, 나로서는 파격적인 편집이다. 옛글들을 정리할 기회를 준 범우사와의 인연이 고맙다. 2015년 8월 산영재에서

어린 왕자(외)

《어린 왕자》는 프랑스가 패전하고 나서 생 텍쥐페리가 미국에 건너가 있는 동안인 1943년 4월에 씌어졌고, 또한 그곳에서 먼저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저자 자신이 헌사(獻辭)에서 밝혔듯이 레옹 베르트라는 어른에게 바친,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그래서 실상 이 작품 속에 담긴 깊은 사색의 의미와 진실을 어린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 작품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어린 왕자라는 연약하고 순결한 한 어린이의 눈을 통하여 잊혀진 진리들이 하나하나 일깨워진다는 데 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길들인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이다. 《인간의 대지》를 비롯하여 생 텍쥐페리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사상은 언제나 책임감과 의무감,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는 휴머니즘이다. 이 《어린 왕자》에서도 이런 사상이 쉽고도 부드러운 표현을 통해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잊혀졌던 진실을 더욱 촉촉히 우리들 마음 속에 적셔주는 것은 어린 왕자의 죽음으로 장식된 슬픔의 종장(終章)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일깨워 준 값진 진실들을 어른들로 하여금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는 이 아름다운 작품을 비극으로 끝맺었다. 어린 왕자와 헤어져 그렇게도 슬퍼하던 지구의 아저씨 생 텍쥐페리가 지금은 어린 왕자의 별에 함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정말 그렇다면 너무나 쓸쓸하여 하루에 마흔세 번씩이나 해 지는 구경을 했다는 어린 왕자도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의 생애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은 세계적으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작가로, 지금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멋쩍을 정도로 감명을 주는 인물이다. 롤랑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1866년 부르고뉴 지방의 클라메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고등 사범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는데, 그 무렵 그는 톨스토이의 사상에 심취했다. 졸업 후 그는 로마로 유학하여 그 곳에서 바그너와 니체의 벗이었던 뮈젠베르크 부인을 알게 되어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모교와 소르본 대학에서 예술사, 음악사를 강의하였으며 광범위한 문필 활동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항상 엄격한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인간에의 사랑과 존경을 설파한 평화주의자인 롤랑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스위스에 머물러 있으면서 전쟁의 비인간성을 격렬하게 비판하였고, 반파시스트·반전 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고향 근처의 베즐레에서 반나치 저항 운동의 투사들을 격려하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1915년 그는 《장 크리스토프》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대하소설 《매혹된 영혼》, 희곡 〈사랑과 죽음의 유희〉, 평론 〈싸움을 초월해서〉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또한 그에게는 전기물이라 할 수 있는 일련의 저작물이 있다. 셰익스피어, 괴테, 밀레 등의 전기들은 대부분 죽어 있는 자기 자신의 정신을 어떻게 해서라도 부활시키려는 의욕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특히 이 점이 현저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훗날 《빛을 밝히는 사람들》이라는 표제 하에 한 권으로 정리된 세 가지 전기물로, 여기에 번역·소개하는 세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7~1910), 이 세 사람은 미술, 음악, 문학 분야의 거장들이요, 인류의 역사가 낳은 가장 빛나는 천재들이다. 롤랑은 이들을 “정신에 의해 위대하였던 진정한 영웅”이라 보아, 번뇌에 신음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신神에게 도달하는 기쁨을 찾은 그들의 생애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내일에의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 모두에게 위안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이방인·전락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카 뮈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1913년 알제리의 소읍인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농장의 노무자였던 아버지는 1914년에 전사하였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여자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하여 그는 자동차 부속품상, 알제리 총독부 고용인, 기상대 요원, 해운(海運) 중개인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며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철학을 전공하여 문학사(文學士) 학위를 받았지만, 그 후 결핵을 앓게 되어 교수 자격 시험은 포기하고 말았다. 학생 시절에는 ‘노동좌(勞動座)’라는 극단을 조직하여 자신이 배우 겸 단장이 되어 연극에 열중하기도 했다. 여러 작품의 희곡을 각색하기도 했으며, 카뮈 자신이 오비에도 갱부들의 폭동을 주제로 쓴 <아스튀리의 반란>과 그 밖의 몇 편은 당국의 상연 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 앙드레 말로의 <모멸(侮蔑)의 시대>, 빌드락의 <상선(商船) 테나시 티>, 벤 존슨의 <침묵의 여인> 등을 각색 상연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서는 그가 이반 역으로 무대에서 열연하기도 했다. 그 후 처음에는 알제리 시에서, 그 다음은 파리로 건너가 기자 생활을 하던 중 2차대전을 만나 독일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프랑스가 해방될 무렵에는 《콩바 Combat》지(紙)의 주필로 활약하여 1945년 사임할 때까지 세인(世人)의 이목을 끌던 그 탁월한 사설은 《악튜엘 Actuelles Ⅲ》 가운데 수록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그의 활동은 눈부시게 계속되었다. 특히 그는 핍박과 예속으로 허덕이던 사람들을 옹호하였으며,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쓰러지는 많은 희생자들을 격려하였다. 참혹한 알제리 전쟁 중에는 휴전을 위한 호소에 앞장섰는가 하면, 사형 폐지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카뮈는 앙드레 말로의 주선으로 《이방인 L’Etranger》(1942)을, 유명한 갈리마르사(社)에서 간행했고, 이어 《시지프의 신화》(1943)도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냈다. 종전 후 희곡 <오해>, <칼리굴라>를 각각 1945~46년에 상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전후에 쓴 것으로는 <계엄령>(1948), <정의의 사람들>(1949)이 상연되었다. 1946년에는 미국을 방문했고, 그 다음에 《페스트》를 발표하자 그는 일약 전후 세대의 대가 중의 한 사람으로 문명(文名)을 떨치게 되었다. 1951년에는 에세이 《반항인》이 발표되었다. — 《이방인》에 대하여 《시지프의 신화》보다 1년 전에 발표된 《이방인》은 한마디로 허무의 철학적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며 독자는 그 구체적 형상들의 배후에 있는 심오한 사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이 소설은 수많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인물들과 배경과 스토리를 가진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평범한 일개 사무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사망 전보가 날아오고, 그는 더위 속에서 무덤덤하게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그날 마리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고 나중에는 어느 건달의 친구가 된다. 그 친구를 안 인연으로 말썽에 휘말리고 마침내는 그가 아랍인 한 사람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판결을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린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농도 짙은 허무의 세계가 응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뫼르소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이것이 바로 소설의 중심 테마이다. 어떤 목적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념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정리되는 삶도 아니다. 그의 삶은 그저 맹목적으로 자동적으로 전개될 뿐이다. 그는 사랑도 회한도 환희도 모르는 인간이다. 가장 인간적인 감동도 그를 뒤흔들어놓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도 마리의 사랑도, 뫼르소를 그 수동적이고 따분하고 지친 마비 상태에서 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방인》은 허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끝내 허무함으로 끝나는 작품은 아니다. 뫼르소는 드디어 폭발적으로 반항을 함으로써 그 무거운 ‘일상(日常)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추악할 만큼 ‘일상적 삶’의 맹목적 자동성에 혼합되었던 그가 드디어 ‘자유를 전취’했고, 다시 잠재우려는 ‘희망의 유혹’을 물리쳤으며, 죽음에 직면하여 본능적으로 자살이 아닌 ‘반항’을 택한 것이다. 그 보답으로 그는 감각이 풍부한 삶과 현순간에 놀라울 만큼 절묘한 맛을 얻는다. “허망은 죽음의 의식이며 동시에 그 거부이다. 그것은 사형수의 머리에 떠오르는 최후 상념의 맨 끝에 나타나는 구두끈― 바로 몇 미터 앞에 그 아찔한 자기 전락(轉落)의 바로 막바지에―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그 어처구니없는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는 사형수다”라고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밝히고 있다. 《이방인》이 발표되자 이 작품은 실존주의의 문학적 승리로서 평가되었다. 2차대전을 전후해서 세계에 실존주의 작품이 선풍을 일으킨 것은 바로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일련의 철학적 이론 때문이었다. 카뮈는 실존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경향에 속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이 《이방인》을 “건조하고 깨끗한 작품, 외관상으로는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잘 짜인 작품이며 너무나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상의 해설은 루페(Robert de Luppe)의 <알베르 카뮈론>에서 ‘이방인’에 관한 대목만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루페는 소르본 대학을 나온 철학과 문학 교수로서 <문학에 의한 해방>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프랑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기도 하다. 특히 현대 철학과 문학을 전공, 그 첫 저작으로 이 <카뮈론>을 내놓았다. — 《전락》에 대하여 《전락(轉落:La chute)》은 카뮈가 모든 정치 활동에서 은퇴한 후 언론계로 복귀한 1955년 그의 나이 41세 때 간행된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어느 작품보다도 허무의 우수(憂愁)가 짙게 깔려 있다. 어두운 비췻빛 운하와 비둘기 떼들이 높이 나는 음산하고 축축한 지옥 같은 적지(謫地)에서 주인공 클라망스는 어떻게 자기가 전락하게 되었는가를 집요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센 강의 다리를 건너갈 때, 물 속으로 뛰어드는 여자를 보고서도 구하지 않고 지나친 이후로 그는 까닭 모르는 웃음소리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클라망스로 하여금 과거의 자기를 돌아보게 한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마침내 지금까지 그의 명성과 덕망이 모두 위선에서 비롯된 허위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는 결백하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죄악을 심판하는 현대인의 유죄성(有罪性)을 밝혀 내어 우리는 모두 비슷한 죄인임을 유추시킨다. 카뮈는 이 작품을 통하여 부조리(不條理)와 모순(矛盾)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초상화를 그려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클라망스의 마음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참자아를 일깨우는 양식의 소리일 수도 있다. 그것은 듣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자신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이정림, 그의 수필과 인연들

1974년 <한국수필> 전신인 <수필문예>에 <얼굴>이라는 글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때 내 나이는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나는 글을 써 왔다. 번역물을 비롯하여 문예적인 글(콩트)도 썼고 비문예적인 글(신문 기사)도 썼다. 그러다가 수필 전문지에 글을 내면서부터 내 글에 ‘수필’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등용문을 거치지 않은 ‘무면허’ 수필가였다. 주위의 권유에 의해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정식 수필가가 되었지만, 문인협회에 가입한다든가 문단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문인’이라고 자처할 만큼 자신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작가는 글로써만 말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 우송 김태길 회장님의 추천으로 수필문우회에 가입하면서부터 수필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때 수필문우회에는 거목 같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분들의 굄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수필은 물론 평론도 쓰게 되어 1998년에는 《한국수필평론》이라는 묵직한 책까지 내었다. 거목 같은 분들의 굄을 받던 40∼50대는 내게는 전성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어쩔 수 없어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조사(弔詞)와 함께 떠나보내 드리면서 나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이 수필집은 내 수필보다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되새기고 싶어 엮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한 개인을 위한 글들이지만 혼자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다른 수필인들도 선생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인 내 몇 편의 수필들은 어느 단행본에도 들어 있지 않은 신작들이다. 이제 나는 황혼기도 아닌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내 수필 인생의 총 정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총 정리라는 말보다 중간 정리라는 말을 쓰고 싶다. 미완성인 책이 아직도 몇 권 더 있으니…. 돌아보니, 미욱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귀한 인연들 덕분이다. 그 고마운 인연들은 그리움이 되어 때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자전적인 성격의 글들을 기꺼이 책으로 엮어 주신 범우사 윤형두 회장님, 젊은 시절을 함께한 그분과의 인연도 참으로 깊다. - 2020년 3월 26일 - 책을 내면서

이정림의 수필 특강

◇ 책을 내면서 나는 글을 어렵게 쓸 줄 모른다. 나 자신이 어려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어려운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아는 것이 많았으면 지식을 뽐내느라 난해한 글을 썼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읽힐 것이다. 30여 년 동안 수필 강의를 하면서 수업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에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인생의 재발견- 수필 쓰기》를 출간했다. 다른 분야의 책도 함께 시리즈로 묶었는데, 그중에서 내 책이 6쇄를 찍더니 2020년에는 개정증보판까지 나왔다. 강의하는 분들이 그 책을 교재로 많이 쓴다고 들었다. 또 수필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도 자신들의 블로그에 친절하게 서평을 올려주었다. 이번에는 분량이나 체재에 구애받지 않고 미흡한 부분을 보충하여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발표한 글의 취합이다 보니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30년 전에 쓴 글이나 최근에 쓴 글이나 내 수필관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많이 나오는 말은 주제·주제 의식·의미화·일반화·사회의식·철학 등이다. 이 말들은 바로 내 수필관의 핵심어라 할 수 있다. 표제를 ‘이정림의 수필 특강’이라고 붙인 것은, 제 수필 강의도 한 번 들어 보시라는 의미에서였다. 끝으로 이 책에 있는 글들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란다. 글자 하나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책에 그대로 옮겨 쓴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출처를 밝히는 일은 작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양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 2021년 4월 잎새달에

인생의 재발견 수필 쓰기

이 책은 단순히 비문예적인 산문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필을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출발하려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썼다. 그리고 지식의 과시나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20여 년 동안 수필 강의를 해오면서 초심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총정리한다는 의미로 썼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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